진실(眞實)
Ch.3 밀정의 그림자
Ch.3 밀정의 그림자 — Part 6
Part 6 — 조봉출의 다리 (1919년 10월~11월, 상하이)
1919년 10월 15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상하이의 가을비는 경성의 비와 달랐다. 따뜻했다. 축축하고, 눅눅하고, 피부에 달라붙는 비. 황푸강에서 올라오는 안개가 거리를 삼키고 있었고, 가스등이 안개 속에서 물에 젖은 불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조봉출이 우산 없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서른여섯.
장윤보의 무역 파트너. 상하이 거주 한인. 조선에서 무역업을 하다 1915년에 상하이로 건너왔다. 표면적으로는 수출입업자. 실제로는 — 독립운동 자금의 전달자.
조봉출은 10가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윤보가 "형제처럼 믿는 남자"라고 한 사람이었다. 경성과 상하이 사이의 자금 루트, 조봉출이 관리하고 있었다.
3개월 전, 연재희가 미주에서 보낸 $10,000을 인수한 것도 조봉출이었다. 상하이 HSBC 은행의 전신 송금. 뉴욕에서 출발한 돈이 런던을 거쳐 상하이에 도착.
그 $10,000은 지금 — 프랑스 조계의 한 은행 금고에 있었다.
문제는, 그 돈이 어디서 왔는지 — 누군가가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hr>
조봉출이 올드 시티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상하이의 올드 시티. 중국인 구역.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2층 목조건물들이 서로 기대어 서 있었다. 빨래가 건물 사이에 줄줄이 널려 있었고, 국수 냄새와 향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 미로 같은 골목이 — 조봉출의 보호막이었다. 일본인 탐정이나 밀정이 이 골목에 들어오면 눈에 띄었다. 중국인이 아닌 사람은 — 바로 알 수 있었다.
조봉출이 골목 깊숙한 곳의 찻집에 들어갔다.
'萬福茶館(만복차관)'
2층짜리 찻집. 1층에서 차를 마시고, 2층에서 — 비밀 회합이 열렸다.
계단을 올라갔다.
2층에 —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김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부 차장. 마흔둘. 작고 마른 남자. 안경이 두꺼웠고, 항상 주판을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 여인 하나.
이정숙. 서른. 임시정부의 비밀 연락원. 남장(男裝)을 할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중국식 치파오를 입고 있었다. 상하이의 중국인 여성으로 위장.
"봉출 형."
김원기가 일어섰다.
"앉으시오."
조봉출이 의자에 앉으며 우비를 벗었다.
"경성에서 편지가 왔소."
"장 선생?"
"아니. 연재희 씨."
조봉출이 편지를 꺼냈다. 구겨진 봉투. 스위스 우표가 붙어 있었다.
김원기의 눈이 커졌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보낸 것이오."
조봉출이 편지를 읽었다.
봉출 형.
상하이의 다리를 확인하시오.
다리가 안전하면 — 건너시오.
다리가 흔들리면 — 기다리시오.
재희.
"다리?"
김원기가 물었다.
"자금 루트요." 조봉출이 설명했다. "연재희 씨가 암호로 쓴 것이오. '다리가 안전하면 건너라' — 자금 이동 경로가 안전하면 돈을 옮기라는 뜻이오."
"그리고 '흔들리면 기다려라' — 감시당하고 있으면 멈추라는 뜻."
이정숙이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
"다리가…… 안전합니까?"
조봉출이 침묵했다.
3초.
"흔들리고 있소."
김원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사흘 전부터 — 누군가가 따라다니고 있소."
"따라다닌다?"
"일본인이오. 확실하진 않지만 — 프랑스 조계에서 나를 미행하는 남자가 있소. 중국인 옷을 입고 있지만, 걸음걸이가…… 중국인이 아니오."
이정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하이 일본 총영사관의 정보원이겠지요. 3.1운동 이후 상하이에 일본 정보원이 대폭 증원되었습니다."
"그래서 — 다리가 흔들리는 것이오."
조봉출이 차를 마셨다.
"$10,000은 지금 프랑스 조계의 HSBC에 있소. 이 돈을 옮기려면 — 미행자를 따돌려야 하오."
"따돌릴 수 있소?"
"올드 시티에서는 가능하오. 이 골목을 — 일본인은 못 따라와."
"그러나 은행은 올드 시티에 없소."
"그것이 문제요."
침묵.
창밖으로 상하이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황푸강의 기적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영국 상선. 미국 상선. 일본 상선.
상하이는 — 세계의 교차로였다.
그리고 동시에 — 세계의 감시탑이었다.
"또 하나." 조봉출이 말했다. "경성에서 — 이상한 소식이 왔소."
"뭐요?"
"장윤보 선생이 전갈을 보냈소. '종로의 쥐가 움직인다'고."
"종로의 쥐?"
"밀정이오. 한상철이라는 자."
김원기가 인상을 찌푸렸다.
"밀정이 어디까지 알고 있소?"
"연재희 씨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 같소. 그리고 — 10가문의 존재도."
"10가문?"
이정숙이 물었다.
"경성의 열 가문이오. 독립자금을 모은 가문들. 자세한 것은 — 나도 잘 모르오. 장 선생만 아시는 부분이니까."
조봉출이 빈 찻잔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 밀정이 자금 루트까지 추적하면, 상하이가 위험해진다는 것이오."
"경성에서 상하이까지 — 자금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요?"
"장 선생. 나. 연재희 씨. 그리고 — 인천항의 중개인 박재길."
네 명.
이 네 명 중 한 명이라도 — 밀정에게 넘어가면.
"박재길은 믿을 만한 사람이오?"
조봉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 선생이 보증한 사람이오."
"그러면 — 경성 쪽은 장 선생이 처리하실 것이고. 우리는 상하이 쪽을 지켜야 하오."
이정숙이 일어섰다.
"내가 미행자를 확인하겠습니다."
"정숙 씨, 위험하오."
"괜찮습니다. 상하이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이 도시의 그림자를 — 저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정숙이 치파오 자락을 가다듬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조봉출과 김원기가 남았다.
"봉출 형."
"응."
"연재희 씨가…… 정말 스위스에 갔소?"
"갔소."
"2,000만 달러를…… 스위스에 숨기겠다는 것이오?"
"그렇소."
김원기가 주판알을 튕겼다. 습관.
"2,000만 달러면…… 우리 임시정부 연간 예산의 200배요."
"알고 있소."
"그 돈이 스위스에 들어가면 — 100년이 지나도 안전하다?"
"연재희 씨는 — 그렇게 믿고 있소."
"100년……"
김원기가 창밖을 보았다.
"100년 뒤면 — 2019년이오."
"응."
"100년 뒤에…… 조선이 독립해 있을까?"
조봉출이 대답하지 않았다.
알 수 없었다.
1919년의 어느 누구도 — 100년 뒤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 연재희는 알고 있었다.
만년필이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연재희의 가슴 깊은 곳에서 — 확신이 자라고 있었다.
돈을 지키면 —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
111년이 걸리더라도.
<hr>
10월 20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 조봉출의 무역사무소.
이정숙이 돌아왔다.
"확인했습니다."
"미행자?"
"일본 총영사관 소속. 이름은 모리 타케시. 하급 정보원. 중국어는 서툴지만, 미행 기술은 제법입니다."
"혼자요?"
"둘이요. 교대로 따라다닙니다. 아침조와 오후조."
조봉출이 이마를 문질렀다.
"둘이면…… 본격적인 감시란 말이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뭐요?"
"미행자가 — HSBC 프랑스 조계 지점 앞에서도 목격되었습니다."
HSBC.
$10,000이 들어 있는 은행.
"돈이 거기 있는 걸 — 아는 것이오?"
"아직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 조봉출 씨가 그 은행을 자주 출입하는 것은 이미 파악했을 겁니다."
조봉출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보았다.
비가 그쳐 있었다. 상하이의 오후 햇살이 황푸강 위에 비치고 있었다. 강 위의 배들 — 영국 군함, 일본 상선, 중국 범선 — 이 천천히 오가고 있었다.
"돈을 옮겨야 하오."
"어디로?"
"HSBC에서 — 다른 은행으로. 아니, 은행이 아니라……"
조봉출이 생각했다.
은행은 기록이 남는다. 기록은 추적이 된다. 일본 정보부가 HSBC에 압력을 넣으면 — 계좌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 영국 은행이 일본 정부의 요청을 쉽게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영국의 동맹국이니까.
"금(金)."
이정숙이 말했다.
"금으로 바꾸시오."
"금?"
"$10,000을 금괴로 바꾸면 — 은행 기록에서 벗어납니다. 금은 추적이 안 됩니다. 무겁고 번거롭지만 — 안전합니다."
조봉출이 이정숙을 바라보았다.
"정숙 씨, 어디서 그런 걸 배웠소?"
이정숙이 웃었다.
"상하이에서 10년을 살면 — 돈 세탁하는 법쯤은 배웁니다."
"돈 세탁이라니……"
"독립자금 세탁이요. 더러운 일이 아닙니다."
조봉출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금으로 바꾸겠소."
"금으로 바꾸면 — 어떻게 스위스까지 운반합니까?"
김원기가 물었다.
"장 선생의 무역선이오." 조봉출이 말했다. "장윤보 선생의 무역 루트. 상하이에서 마르세유로 가는 화물선이 있소. 비단과 도자기를 실어 보내는 배. 그 화물 사이에 — 금을 숨길 수 있소."
"위험하지 않소?"
"위험하지 않은 일은…… 없소."
조봉출이 창밖을 다시 보았다.
황푸강.
이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바다는 인도양을 거쳐 수에즈 운하를 지나 지중해로, 지중해에서 마르세유로, 마르세유에서 기차로 취리히까지.
자금의 다리.
연재희가 말한 '다리'.
다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 무너지지는 않았다.
아직은.
"정숙 씨."
"네."
"내일 HSBC에서 $10,000을 인출하겠소. 그 돈을 — 올드 시티의 금은방에서 금으로 바꿔주시오."
"알겠습니다."
"미행자를 따돌려야 하오."
"방법이 있습니다."
이정숙이 미소를 지었다.
"상하이에는 — 비밀 통로가 많습니다. 프랑스 조계에서 올드 시티로 넘어가는 지하 통로. 아편굴 주인만 아는 길.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조봉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 건너야 했다.
<hr>
10월 25일. 상하이.
이정숙의 계획대로 — 미행자를 따돌렸다.
프랑스 조계의 HSBC에서 $10,000을 현금으로 인출했다. 미국 달러 고액권 뭉치. 가방 하나에 들어가는 양.
조봉출이 가방을 들고 은행을 나섰다.
50미터 뒤에서 — 미행자 모리가 따라왔다.
계획대로.
조봉출이 좌회전했다. 대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갔다. 모리가 따라왔다. 골목이 좁아졌다. 건물이 높아졌다. 햇빛이 사라졌다.
골목 중간에서 — 문 하나가 열렸다.
중국 여자가 서 있었다. 치파오. 이정숙이었다.
"이쪽으로."
조봉출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모리가 30초 뒤에 골목에 도착했다.
조봉출이 — 사라져 있었다.
문 다섯 개. 어느 문으로 들어갔는지 — 알 수 없었다.
모리가 문들을 두드렸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상하이의 골목은 — 그랬다. 100년 동안 비밀을 숨겨온 골목.
"くそ(제기랄)."
모리가 욕을 내뱉고 돌아갔다.
<hr>
지하 통로.
아편굴의 지하. 습하고 어두웠다. 벽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쥐가 지나갔다.
조봉출이 가방을 꼭 쥐고 걸었다.
이정숙이 앞에서 등불을 들고 안내했다.
"100미터만 더 가면 올드 시티로 나옵니다."
"이 통로가…… 어디로 이어지는 거요?"
"옛날에 태평천국군이 판 통로라고 해요. 그 뒤로 밀수업자들이 쓰고, 아편 거래상들이 쓰고…… 지금은 — 우리가 쓰고 있지요."
조봉출이 쓴 웃음을 지었다.
"독립자금이 아편굴 통로를 지나다니."
"자금에 냄새가 나는 건 아니니까요."
이정숙이 먼저 웃었다.
통로가 끝났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 나무 사다리.
올라가니 — 올드 시티의 금은방 뒷방이었다.
왕시푸(王世夫). 금은방 주인. 예순 넘은 중국인 노인. 이정숙과는 오래된 사이인 듯 — 인사도 없이 금고를 열었다.
"얼마입니까?"
"미화 $10,000. 금으로."
왕시푸가 달러를 세었다. 두 번 세었다. 저울을 꺼냈다. 금괴를 꺼냈다.
$10,000 상당의 금.
금괴 네 개. 각 100온스. 합계 400온스.
무게 — 약 12킬로그램.
조봉출이 금괴를 들어보았다. 묵직했다.
"12킬로…… 이걸 스위스까지?"
"금괴는 무역품으로 위장할 수 있습니다." 이정숙이 말했다. "도자기 상자 밑에 숨기면 — 세관에서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장 선생의 무역선으로?"
"다음 출항이 — 11월 초입니다. 마르세유행. 한 달이면 도착합니다."
조봉출이 금괴를 천으로 감쌌다.
"$10,000이…… 이제 금이 되었소."
"이것은 시작입니다."
이정숙이 말했다.
"$10,000은 시작. 2,000만 달러가 — 목표입니다."
"2,000만 달러면…… 금 몇 톤이오?"
"약 37톤."
37톤의 금.
조봉출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37톤의 금을 상하이에서 스위스까지 — 밀정의 눈을 피해 — 운반해야 했다.
그러나 — 그것은 먼 미래의 문제였다.
지금은 이 12킬로그램부터. 이 네 개의 금괴부터.
한 발짝씩.
조봉출이 금괴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 올드 시티의 밤 속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이정숙이 따라왔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 상하이의 골목을 지나갔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