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3 밀정의 그림자
Ch.3 밀정의 그림자 — Part 2
Part 2 — 파리의 유령들 (1919년 9월 8일~15일)
9월 8일. 런던 빅토리아 역.
도버행 기차를 타기 전, 연재희는 신문을 샀다.
The Times. 1면.
'VERSAILLES TREATY RATIFICATION — SENATE DEBATE CONTINUES'
베르사유 조약 비준. 미국 상원에서 논쟁 중.
연재희가 3면을 넘겼다. 동아시아 섹션. 작은 기사 하나.
'JAPAN STRENGTHENS GRIP ON KOREA — NEW POLICE UNITS DEPLOYED'
일본, 조선 통제 강화. 새 경찰 부대 배치.
3.1운동 이후였다. 일본 조선총독부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한다고 발표했지만 — 실상은 정보 수집과 감시의 강화였다. 헌병경찰이 보통경찰로 바뀌었을 뿐, 조선인을 감시하는 눈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연재희가 신문을 접었다.
"새 경찰 부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정보기관. 밀정. 독립운동가를 추적하는 전문 조직.
그리고 — 자신도 추적 대상이라는 것을.
미주 순회 중 연재희가 한 연설들, 한인교회에서의 모금 활동, 대한인국민회와의 접촉 — 이 모든 것이 일본 영사관을 통해 도쿄에 보고되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일본 총영사관, 뉴욕의 일본 영사관. 그 안에 조선인 밀정이 있었다. 반드시.
"빨리 움직여야 한다."
연재희가 기차에 올랐다.
<hr>
도버 해협.
페리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좁았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불과 33킬로미터. 태평양의 광활함에 비하면 — 물웅덩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 좁은 바다가 역사를 바꿨다. 나폴레옹이 건너지 못한 바다. 히틀러가 — 아직 이름 없는 이 시점에서는 뮌헨의 맥주홀에서 연설을 시작한 무명의 남자 — 도 건너지 못할 바다.
페리가 칼레에 닿았다.
프랑스.
연재희가 프랑스 땅에 발을 디뎠을 때, 처음 느낀 것은 — 냄새였다.
흙냄새. 비린 냄새. 그리고 — 무언가 탄 냄새.
전쟁의 냄새.
칼레에서 파리까지 기차로 4시간. 창밖으로 보이는 프랑스 북부의 풍경은 — 영국과 달랐다. 들판 곳곳에 포탄 구멍이 있었다. 부서진 교회의 첨탑이 비스듬히 서 있었다. 참호의 흔적이 밭 사이로 드러나 있었다.
4년간의 참호전.
100만 프랑스 청년이 이 들판에서 죽었다.
연재희가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이 전쟁이다. 나라와 나라가 싸우면 이렇게 된다. 그렇다면 — 나라를 잃은 민족이 나라를 되찾으려면, 이보다 더한 것을 각오해야 하는 건가.
기차가 파리에 도착했다.
가르 뒤 노르(Gare du Nord).
파리의 역은 거대했다. 유리 돔형 지붕 아래로 증기기관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군복 차림도 있었고, 양복 차림도 있었고, 꽃을 든 여자들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1년.
파리는 — 축제와 상복(喪服) 사이에 있었다.
연재희가 역을 나섰다. 파리의 거리. 마로니에 가로수. 카페 테라스.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와인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연재희가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은 — 나라가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 자유가 있었다. 그래서 웃을 수 있었다.
조선인은 — 웃을 수 없었다.
"파리강화회의."
연재희가 혼잣말을 했다.
6개월 전, 이 도시에서 파리강화회의가 열렸다. 1919년 1월. 전쟁 후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회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했고, 조선에서는 그 말을 믿었다.
김규식이 파리에 왔다. 조선 대표로. 그러나 —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일본이 막았다. 영국이 외면했다. 미국이 침묵했다.
민족자결주의는 — 백인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연재희가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스위스다. 국제 정치에 기댈 수 없다면, 외교에 기댈 수 없다면 — 돈이라도 지켜야 했다. 돈은 배신하지 않는다. 금고에 넣어두면 — 누가 배신하든, 누가 외면하든, 돈은 거기 있다.
<hr>
파리에서 하루를 묵었다.
라탱 지구의 싸구려 호텔. 1박 8프랑. 좁은 방에 침대 하나.
연재희가 수첩에 적었다.
구월 구일. 파리.
파리강화회의가 열렸던 도시.
김규식 선생이 회의장 밖에서 기다리다 돌아간 도시.
우리는 — 문 앞에도 서지 못했다.
6개월 전의 일이다.
그러나 오늘, 이 도시의 은행에서 돈을 찾아 스위스로 가려는 조선인이 있다.
문 앞에 서지 못한다면 — 금고를 열자.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
이기겠지?
호텔을 나서려는데, 프런트의 중년 여자가 말을 걸었다.
"Monsieur, 누가 찾았어요."
"찾았다고요? 나를?"
"한 시간 전에. 동양인 남자. 이름을 묻지 않고 그냥 갔어요."
연재희의 심장이 멈췄다.
동양인 남자.
이름을 묻지 않고 갔다.
"어떤……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키가 작고, 안경을 쓰고…… 양복을 입고 있었어요. 아주 정중했어요."
연재희가 호텔 문을 열었다. 거리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마로니에 가로수 아래 카페 테라스, 신문을 읽는 남자, 빵을 사는 여자.
평범한 파리의 아침.
그러나 —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왔다.
이름도 묻지 않고.
연재희의 손이 주머니 안의 만년필을 움켜쥐었다.
차가웠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 더 무서웠다.
<hr>
9월 10일. 파리 리용 역(Gare de Lyon).
취리히행 야간열차.
연재희가 기차에 올랐다. 2등 객실. 김호가 넉넉히 여비를 준 덕분에 2등석을 탈 수 있었다. 6인실 칸. 나무 의자. 마주보는 세 좌석.
칸에는 이미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스위스인 사업가 부부. 마흔대 후반. 그리고 — 청년 하나.
청년이 연재희를 보았다.
동양인이었다.
아니 — 일본인이었다.
연재희의 눈이 좁아졌다.
청년은 스물대 초반. 깔끔한 양복. 은테 안경. 작은 가방 하나. 일본인 특유의 — 아니, 연재희가 18년간 보아온 그 특유의 분위기.
눈이 마주쳤다.
청년이 먼저 일본어로 말했다.
"일본 분이십니까?"
연재희가 대답하지 않았다.
2초.
"아, 혹시…… 조선 분?"
연재희가 영어로 대답했다.
"I'm Korean."
"아, 그렇군요." 청년이 일본어에서 영어로 바꿨다. "I'm Saito. Kenji Saito. I'm going to Bern. You?"
"Zürich."
"Oh, Zürich! Beautiful city."
연재희가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았다. 창가에 앉아 바깥을 보았다.
기차가 출발했다. 파리의 불빛이 뒤로 물러갔다.
사이토라는 청년이 책을 꺼내 읽었다. 표지가 보였다 — 프랑스어 책. 법학 서적 같았다.
유학생인가. 외교관인가. 아니면 —
연재희가 생각을 끊었다.
모든 일본인이 적은 아니다. 그러나 — 모든 일본인을 믿을 수도 없었다.
기차가 프랑스 시골을 지나 알프스 산자락에 접어들었다. 밤이 깊어갔다. 스위스인 부부가 잠들었다. 사이토도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연재희만 깨어 있었다.
창밖으로 알프스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별빛 아래 검은 산맥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스위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연재희가 수첩을 펼쳤다. 만년필의 뚜껑을 열었다.
구월 십일. 알프스를 넘는 기차 안.
파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동양인 남자. 이름을 묻지 않고 갔다.
누구인가.
일본 영사관 사람인가.
밀정인가.
아니면 — 동지인가.
모르겠다.
기차 안에 일본인 청년이 있다.
사이토라고 했다.
베른에 간다고 했다.
법학 서적을 읽고 있다.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 경계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순아.
대한아.
아버지가 지금 알프스를 넘고 있다.
대한아, 네가 이것을 읽을 날이 올까.
연재희가 수첩을 덮었다.
사이토가 — 눈을 뜨고 있었다.
잠든 척하고 있었지만 — 눈이 살짝 열려 있었다.
연재희와 눈이 마주쳤다.
1초.
사이토가 눈을 감았다.
연재희의 심장이 빨라졌다.
우연인가. 아닌가.
기차가 터널에 들어갔다. 칸 안이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연재희는 만년필을 품속 깊이 넣었다.
<hr>
9월 11일. 이른 아침. 취리히.
기차가 취리히 중앙역(Zürich HB)에 도착했다.
연재희가 내렸다.
그리고 — 멈췄다.
취리히는 아름다웠다.
역 앞으로 반호프슈트라세가 쭉 뻗어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비싼 거리 중 하나. 양옆으로 은행들이 줄지어 있었다. UBS. 크레디트 스위스. 줄리우스 베어.
그리고 — 리마트 강.
맑은 물이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다. 강 너머로 그로스뮌스터 교회의 쌍탑이 보였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도시 뒤편으로 빛나고 있었다.
전쟁의 상흔이 없었다.
스위스는 중립국이었다. 1차대전의 폭탄도, 참호도, 독가스도 — 이 나라에는 닿지 않았다.
"이런 나라가 있구나."
연재희가 말했다.
조선은 나라를 잃었다. 프랑스는 100만 명을 잃었다. 영국은 팔을 잃은 청년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스위스는 —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 중에 더 부유해졌다. 모든 나라의 돈이 이 나라로 몰려왔으니까. 전쟁과 폭정을 피해, 돈은 언제나 안전한 곳으로 흐른다.
"그래서 여기다."
연재희가 반호프슈트라세를 걸어 내려갔다.
45번지.
UBS — Union Bank of Switzerland.
회색 석조 건물. 두꺼운 참나무 문. 문 위에 은행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연재희가 문 앞에 섰다.
심장이 빨라졌다.
이 문을 열면 — 111년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 문을 열면 — 되돌릴 수 없다.
연재희가 심호흡을 했다.
문을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