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2 태평양을 건너

Ch.2 태평양을 건너 — 프롤로그 — 수첩

프롤로그 — 수첩 (2030년 8월 14일)

서울 용산.

코리안투데이 본사 지하 금고.

연만세가 철문을 열었다. 녹슨 경첩이 삐걱거렸다. 아버지 연독립이 1970년대에 만든 금고였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금고라니 — 그러나 해킹당할 일은 없었다.

금고 안에 물건이 세 가지 있었다.

하나. 만년필. '眞實'.

둘. 비단 주머니. 안에 머리카락 한 타래. 111년 전 증조할머니 정순의 것.

셋. 수첩.

연만세가 수첩을 꺼냈다. 가죽 표지가 닳아 너덜너덜했다. 소금기에 절어 뻣뻣해진 종이. 잉크가 번진 글씨. 바닷물에 젖었다가 마른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증조할아버지 연재희의 태평양 항해 일지.

1919년 3월 8일부터 3월 29일까지. 스물하루 동안의 기록.

연만세가 첫 페이지를 펼쳤다.

삼월 팔일. 첫째 날.
맑음. 바람 강함.
조선을 떠났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거짓말이다. 열두 번 돌아보았다.

"열두 번……"

연만세가 중얼거렸다.

페이지를 넘겼다. 증조할아버지의 글씨는 처음에는 또박또박 정갈했다. 한학을 배운 선비의 글씨. 그러나 날이 갈수록 — 흔들렸다. 뱃멀미 때문이었을까,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글씨가 비틀거렸고, 잉크가 번졌고, 가끔 글자 위에 — 동그란 얼룩이 있었다.

눈물 자국.

연만세가 수첩을 가슴에 안았다.

"할아버지. 내일이면 끝납니다."

금고 안에서, 만년필의 '眞實' 두 글자가 — 희미하게 빛났다.

연만세는 보지 못했다.

수첩만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111년 전, 태평양 위에서 쓰인 글자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