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1 만세의 날
Ch.1 만세의 날 — Part 3 — 아이의 울음
Part 3 — 만세 (1919년 3월 1일, 정오)
정오.
탑골공원 팔각정.
한 사내가 독립선언서를 펼쳤다. 삼천만 겨레의 이름으로 쓰인 글이었다. 민족대표 삼십삼인의 서명이 들어간, 한 장의 종이가 제국을 흔들려 하고 있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낭독이 시작되었다.
연재희는 군중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왼손에 태극기, 오른손에 만년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천 명이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학생도 있었고, 머리 흰 노인도 있었다. 등에 아이를 업은 아낙네도 있었다. 지게꾼도, 인력거꾼도, 기생도 있었다. 양복 차림의 지식인도 있었고, 두루마기의 선비도 있었다.
모두의 눈이 젖어 있었다.
"——조선 건국 사천이백오십이 년 삼월 초일——"
낭독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누가 먼저였는지 알 수 없었다. 동시에 수천 개의 목이 열렸다.
"만세!"
소리가 터져나왔다. 탑골공원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아니, 나무가 흔들린 것이 아니었다 — 소리가 공기를 찢었고, 공기가 나무를 흔들었고, 나무가 하늘을 흔들었다.
"만세! 만세! 만세!"
연재희가 태극기를 들었다. 빨강과 파랑이 삼월의 바람에 펄럭였다. 정순이 밤마다 등잔불 아래서 그린 태극기. 만삭의 배를 안고 그린 태극기. 그 태극기가 지금 — 경성의 하늘 아래서 펄럭이고 있었다.
"만세!"
연재희가 외쳤다. 목이 찢어지도록 외쳤다.
이 순간, 종로 뒷골목 한옥에서 아내가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크게 외쳤다.
"만세!"
들려라. 종로 뒷골목까지. 아내의 귀까지. 뱃속 아이의 귀까지.
"대한 독립 만세——!"
<hr>
군중이 탑골공원을 빠져나왔다. 종로로, 광화문으로, 남대문으로, 서대문으로. 물이 제방을 넘듯,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태극기가 바다를 이루었다.
백경수가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
찰칵. 찰칵. 찰칵.
태극기를 든 학생. 만세를 부르는 노인. 아이를 업고 뛰는 아낙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부르는 사내. 찢어진 목소리로 "독립"을 외치는 소년.
"이것을 기록해야 해."
백경수의 손이 떨렸다. 카메라의 파인더 속에 비친 경성은 — 일제가 점령한 식민지가 아니었다. 독립을 선언한 나라였다.
찰칵.
한 장 더.
찰칵.
또 한 장.
필름이 돌아갈 때마다, 역사가 기록되었다.
<hr>
종로 2가.
연재희가 태극기를 나눠주고 있었다. 정순이 그린 태극기 서른일곱 장 중 남은 것이 열다섯 장. 지나가는 사람마다 "만세!" 하고 외치며 태극기를 받아갔다.
"여기, 하나 더!"
"만세!"
"대한 독립!"
그때였다.
종각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쩍. 쩍. 쩍. 군화 소리. 그것도 수십 켤레의 군화 소리. 그리고 그 위로 — 일본어의 고함이 들렸다.
"해산하라! 해산하라!"
일본 헌병대가 출동했다.
종로를 가로막고 선 것은 기마 헌병이었다. 칼을 찬 헌병들이 말 위에서 군중을 내려다보았다. 그 뒤에 보병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군중이 멈칫했다.
잠깐의 침묵.
그 침묵을 깬 것은 — 한 노인이었다. 머리가 새하얀 노인.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일흔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기마 헌병 앞으로 걸어나갔다.
"대한 독립 만세."
목소리는 작았다. 그러나 온 거리가 들었다.
"만세!"
군중이 다시 외쳤다. 기마 헌병이 앞으로 나서자,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나갔다.
"만세!"
"만세!"
연재희가 군중 속에서 외쳤다. 품속의 만년필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 위에 얹어둔 그것이 —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
헌병이 칼을 뽑았다.
찰칵.
백경수가 그 순간을 찍었다.
<hr>
오후 한 시.
경성 전체가 만세 소리로 들끓었다. 종로에서 시작된 시위는 남대문으로, 서대문으로, 동대문으로 퍼졌다. 조봉출이 움직였다. 남대문시장 상인 이백여 명이 시장 문을 닫고 거리로 나왔다. 포목상, 곡물상, 잡화상 — 장사를 접고 태극기를 든 것이다.
연재희가 남산 쪽을 올려다보았다. 일본 총독부가 있는 곳. 저 위에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삼천만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연 서방!"
뒤에서 누군가 뛰어왔다. 장윤보의 점원이었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연…… 연 서방 댁에서…… 아이가……"
연재희의 심장이 멈췄다.
"아이?"
"산파가…… 아이가 나온다고…… 빨리 오시랍니다!"
연재희가 뛰었다.
만세 소리가 가득한 종로를 뚫고 뛰었다. 태극기를 든 사람들 사이를 뚫고 뛰었다. "만세!" "만세!" 사방에서 외치는 소리 사이로 뛰었다.
집까지 — 보통 걸으면 이십 분, 뛰면 십 분.
연재희는 오 분 만에 도착했다.
<hr>
한옥 대문을 열자,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애——
연재희가 멈춰 섰다.
그 울음소리는 — 만세 소리와 겹쳤다. 한옥 담장 너머로 "만세!" "만세!"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고, 방 안에서는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백경수의 동생 경호가 마루에 서 있었다.
"축하하오, 연 서방! 사내아이요!"
연재희가 방문을 열었다.
정순이 땀에 젖은 채 누워 있었다. 산파 할머니가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정순의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작은 것. 붉은 것. 주먹을 불끈 쥐고 울고 있는 것.
"여보……"
정순이 웃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 있었지만, 눈만은 빛나고 있었다.
"들었어요."
"무엇을?"
"만세 소리."
정순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이 아이…… 만세 소리를 들으며 나왔어요."
연재희가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양반이 무릎을 꿇는 것은 제사 때뿐이라 했다. 하지만 지금은 — 아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한아."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나온 지 겨우 몇 분 된 생명이 — 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처럼.
"네 이름은 대한이다."
담장 너머에서 만세 소리가 들려왔다.
"만세!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연재희가 아들을 안아 올렸다. 작고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것 안에 — 백 년의 무게가 들어 있었다. 이 아이가 살아갈 백 년. 이 아이가 짊어져야 할 비밀. 이 아이가 전해야 할 진실.
물론, 연재희는 아직 그것을 몰랐다.
그것이 정확히 111년이 되리라는 것을.
품속의 만년필이 빛났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연재희의 저고리 안, 심장 바로 위에서, 검은 만년필의 '眞實' 두 글자가 금빛으로 한 번 — 그리고 다시 어두워졌다.
만년필이 주인을 찾은 것인지, 아니면 다음 주인의 탄생을 축하한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방 안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울려퍼졌고,
담장 밖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퍼졌고,
그 두 소리가 경성의 하늘 위에서 하나로 만났다.
1919년 3월 1일.
정오를 막 넘긴 시각.
연대한이 세상에 왔다.
111년의 시계가 째깍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