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1 만세의 날

Ch.1 만세의 날 — Part 2 — 피의 거리

Part 2 — 경성의 아침 (1919년 3월 1일, 오전 8시~11시)

종로 네거리.

아침 여덟 시의 경성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일본인 상점에서 주인이 나와 간판을 닦았고, 조선인 지게꾼이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지나갔다. 전차가 종을 울리며 종각 쪽으로 달렸다. 헌병 초소 앞에서 일본 순사가 하품을 했다.

그러나 눈썰미 있는 자라면 알아챘을 것이다.

사람이 많았다.

평소 토요일 아침치고는 지나치게 많았다. 학생 차림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탑골공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보자기를 안은 아낙네들이 종로 골목을 따라 흘러들었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갓을 고쳐 쓰고 느린 걸음으로, 그러나 분명한 방향으로, 북쪽을 향해 걸었다.

연재희와 백경수는 인사동 골목에 있었다.

"몇 시인가?"

"여덟 시 반이네."

"정오까지 세 시간 반."

연재희가 보자기를 풀었다. 태극기 서른일곱 장을 세 묶음으로 나누었다. 열두 장, 열두 장, 열세 장.

"한 묶음은 내가 가져가겠네. 종로 2가에서 나눠줄 것이네."

"한 묶음은?"

"조봉출 어른에게 전하게. 남대문시장 안쪽, 포목점 뒤에 계실 것이네."

조봉출. 남대문시장의 터줏대감. 육십이 넘은 노인이었으나, 독립의지만큼은 청년을 능가했다. 시장 상인들의 연락망을 쥐고 있는 사람. 그의 손에 태극기가 들어가면, 한 시간 안에 남대문에서 용산까지 퍼진다.

"나머지 한 묶음은?"

"서광제 형에게."

백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광제. 세브란스 의학교를 나온 의사. 오늘 만약 — 아니, 반드시 — 부상자가 생길 것이다. 서광제가 세브란스 병원 뒤쪽에 비밀 진료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경수."

"응?"

"오늘…… 사진을 많이 찍어주게."

백경수가 품 안의 카메라를 두드렸다.

"필름 여섯 롤 가져왔네. 이백 장은 찍을 수 있어."

"이백 장이면 족하겠군."

"족하다니. 오늘 일어날 일을 이백 장에 다 담을 수 있겠나? 이천 장도 모자랄 것이네."

연재희가 웃었다. 오늘 처음 웃는 웃음이었다.

"기록은 자네 몫이네."

"나는 찍기만 하겠네. 쓰는 것은 자네 몫이야."

연재희가 품속의 만년필을 만졌다. 새벽에 광에서 발견한 검은 만년필. '眞實'이라 새겨진 물건. 여전히 미지근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누가 놓아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 이것이 오늘을 위한 것이라는 직감은 있었다.

"가세."

두 사내가 헤어졌다. 백경수는 남대문 방향으로, 연재희는 종로 2가 방향으로.
<hr>
오전 아홉 시. 종로 2가.

연재희는 포목점 뒤 골목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하나, 둘. 약속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먼저 온 것은 최운학이었다.

스물여섯. 사립학교 교장. 키가 크고 얼굴이 길었다. 가르치는 것이 천직인 사내였다. 오늘 그의 학교 학생 스무 명이 탑골공원에 올 것이었다.

"연 서방, 태극기는?"

"여기 있소, 최 선생."

연재희가 태극기 다섯 장을 건넸다. 최운학이 받아들고 펼쳤다. 빨강과 파랑이 아침 햇살에 번쩍였다. 최운학의 눈이 붉어졌다.

"누가 그렸소?"

"내 아내가."

"……정순 아씨가? 만삭의 몸으로?"

"밤마다 등잔불 아래서. 서른일곱 장을."

최운학이 태극기를 가슴에 안았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오늘…… 이 태극기를 드는 학생 중에 죽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오."

"알고 있소."

"그래도 가야 하오?"

"가야 하오."

두 사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다음으로 온 것은 송학주였다.

스물넷. 동아일보가 아직 창간되기 전이었으나, 이미 언론인의 기질이 있는 청년이었다. 손에 만년필을 쥐면 칼보다 날카로운 글을 쓰는 사내.

"연 형, 독립선언서 읽어보셨습니까?"

"읽었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 소름을 기억하게, 학주. 오늘 이후 자네의 글이 그 소름을 세상에 전해야 하네."

송학주가 고개를 숙였다. 스물넷 청년의 어깨가 떨렸다. 두려움인지 흥분인지,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덕이 왔다.

서른둘. 군인이었다. 아니, 군인이라 할 수 있는 나라가 없으니, 그냥 싸울 줄 아는 사내라 해야 했다. 의병 출신. 아버지가 을미의병에 참여했고, 그 아들은 정미의병에 참여했다. 칼과 총을 다루는 데 조선 팔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싸우는 날이 아니오, 이 형."

연재희가 먼저 말했다. 이상덕의 눈에 전투의 불꽃이 번뜩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알고 있소. 만세를 부르는 것이지, 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소."

"하지만…… 저들이 총을 쏘면?"

"맞아야지."

이상덕이 연재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맞아야 한다고?"

"우리가 먼저 총을 쏘면, 세계는 우리를 폭도라 부를 것이오. 우리가 맞으면, 세계는 우리를 순국자라 부를 것이오."

이상덕이 한참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오늘은 맞겠소. 하지만 다음에는 싸우겠소."

"다음에는 싸우시오. 오늘은 만세만."

이상덕이 태극기를 받아들었다. 칼을 잡던 손이 태극기를 잡았다. 전사의 손에 들린 태극기는 유난히 팽팽했다.
<hr>
오전 열 시.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윤택선이 왔다. 스물다섯, 화학을 전공한 과학자. 오늘 시위에 쓸 먹물과 풀을 만들어온 사내. 독립선언서를 벽에 붙이려면 풀이 필요했고, 그 풀을 만드는 데 과학이 필요했다.

"연 형, 풀 다섯 통 가져왔습니다."

"수고했네, 택선."

"쌀풀인데, 빗물에도 쉬이 지워지지 않도록 배합했습니다."

연재희가 웃었다. 독립에도 과학이 필요한 시대였다.

장윤보가 왔다. 서른셋, 무역상. 상하이와 경성을 오가는 사내. 오늘 시위 자금을 댄 사람 중 하나였다. 인쇄 비용, 풀 재료비, 연락원 여비 — 모두 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돈은 문제없소?"

"문제없소. 다만……"

장윤보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상하이에서 연락이 왔소. 임시정부 수립 이야기가 나오고 있소."

연재희의 눈이 커졌다.

"임시정부?"

"오늘 시위가 성공하면…… 그 다음 단계라는 것이오."

두 사내가 눈을 마주쳤다. 오늘은 시작일 뿐이라는 것. 만세 이후에 진짜 일이 시작된다는 것.

열한 시.

경성의 하늘이 맑게 개었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삼월 초하루의 해가 중천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탑골공원 주변에는 이미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학생, 상인, 교사, 의사, 장사꾼, 아낙네, 노인, 소년.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 아니, 조선 사람이기에 — 이 자리에 왔다.

연재희가 품속의 만년필을 꺼내 바라보았다.

'眞實'

두 글자가 삼월의 햇살에 빛났다. 그리고 — 이것은 나중에야 기억해냈지만 — 만년필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무언가를 예감하듯.

"한 시간 남았네."

백경수가 어느새 옆에 와 있었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다. 필름 여섯 롤이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조봉출 어른에게는?"

"전했네. 남대문시장 상인 이백 명이 준비되었다고 하시더군."

"서광제 형에게는?"

"세브란스 뒤쪽에 진료소 준비 완료. 의약품은 모자라지만, 손은 남아돌 것이라고."

연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탑골공원 팔각정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한 사내가 팔각정 위에 올라갔다. 독립선언서를 손에 들고.

열한 시 사십분.

이십 분 남았다.

연재희가 눈을 감았다.

정순. 만삭의 아내. 지금 진통을 겪고 있을 여인. 아이가 오늘 나오면 — '대한'이라 이름 짓겠다고 했다. 연대한. 만세 소리를 들으며 태어나는 아이.

눈을 떴다.

경성의 하늘이 파랬다. 이토록 파란 하늘 아래서 만세를 부르게 될 줄이야.

정오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