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3 밀정의 그림자

Ch.3 밀정의 그림자 — Part 5

Part 5 — 쿠로카와 겐조라는 남자 (1919년 10월, 경성/도쿄)

쿠로카와 겐조의 이력을 말해야 한다.

이 남자를 이해하지 않으면 — 111년의 서사에서 적(敵)의 무게를 알 수 없다.

1880년경 도쿄 출생. 정확한 생년은 기록마다 다르다. 쿠로카와 자신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었다. 정보장교에게 개인 정보는 약점이었으니까.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동급생 중 수석. 졸업 후 육군에 입대하지 않고 — 외무성에 들어갔다. 외교관 시험에 합격. 상하이 영사관, 런던 대사관, 워싱턴 대사관을 거쳤다.

그러나 쿠로카와의 진짜 직업은 외교관이 아니었다.

정보.

일본 제국의 정보 활동. 각국에서 군사·정치·경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보고하는 일. 외교관이라는 겉옷 아래에 — 정보장교의 본질이 숨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합.

쿠로카와가 조선에 부임한 해. 그때 서른쯤이었다. 조선총독부 소속 — 그러나 실제로는 육군 참모본부 직속의 정보장교.

임무: 조선인의 항일 활동 감시. 독립운동 자금 추적. 밀정 관리.

9년.

한상철이 밀정으로 산 기간과 같은 9년. 쿠로카와도 9년 동안 조선에서 정보 활동을 해왔다.

다른 일본 장교들과 달랐다.

다른 장교들은 조선인을 멸시했다. '조센진'이라 부르며 무릎을 꿇렸다. 고문을 즐겼다.

쿠로카와는 — 달랐다.

조선어를 배웠다. 유창하게. 사투리까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조선의 역사를 공부했다. 삼국사기를 읽고,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춘향전을 읽었다.

"적을 알아야 이긴다."

쿠로카와의 철학이었다.

그는 조선인을 멸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 존경에 가까운 것을 품고 있었다. 조선의 문화, 조선의 언어, 조선의 역사.

그러나 그 존경이 —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쿠로카와에게 조선은 '아름다운 정복지'였다. 일본 제국이 문명화해야 할 — 유능하지만 열등한 민족.

이 모순이 — 쿠로카와를 위험한 적으로 만들었다.

조선인을 멸시하는 장교는 조선인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과소평가는 실수를 낳고, 실수는 기회를 만든다.

그러나 쿠로카와는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조선인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았다. 끈질기다는 것을 알았다. 나라를 되찾으려는 의지가 —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 더 철저하게 추적했다.
<hr>
1919년 10월 3일. 경성 종로 헌병대.

쿠로카와 겐조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벽에 지도가 걸려 있었다. 세계 지도. 빨간 핀이 꽂혀 있었다.

경성. 상하이. 샌프란시스코. 뉴욕.

그리고 — 새로 꽂힌 핀 하나.

취리히.

쿠로카와가 취리히에 핀을 꽂으며 혼잣말을 했다.

"스위스."

일본 외무성의 유럽 정보망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베른 주재 일본 공사관.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동양인 남성이 취리히에서 활동 중. UBS 은행에 출입한 것으로 파악.'

쿠로카와가 보고서를 다시 읽었다.

조선인. 취리히. UBS.

"독립자금."

쿠로카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것이었다. 이것이 — 쿠로카와가 9년 동안 추적해온 것.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는 것은 쉬웠다. 만세를 외치는 사람을 잡는 것, 태극기를 숨긴 집을 수색하는 것, 비밀 모임을 급습하는 것 — 이런 것은 일반 경찰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돈.

독립운동의 자금줄을 추적하는 것 — 이것이 진정한 전쟁이었다.

사람을 잡아도 새 사람이 나타난다. 조직을 깨도 새 조직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돈을 끊으면 — 모든 것이 멈춘다.

"연재희."

쿠로카와가 사진을 집어 들었다. 한상철이 가져온 사진.

스물일곱 살 청년. 충청도 양반가 출신. 한학과 서학을 겸비. 3.1운동 참여자.

그리고 — 미주 순회 모금 활동가.

"이 남자가…… 스위스까지 갔다."

쿠로카와가 지도에서 경성과 취리히 사이의 거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태평양 + 미국 대륙 + 대서양 + 유럽.

"대단하군."

진심이었다.

쿠로카와는 연재희를 존경했다. 적에 대한 존경. 전장에서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느끼는 — 그런 감정.

그러나 존경이 — 자비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상철."

쿠로카와가 한상철의 보고서를 읽었다.

10가문의 명단. 장윤보. 백경수. 조만석. 서광제. 이상덕. 최동진. 한예린. 송학주. 윤달성. 그리고 — 연재희.

"10가문이라……"

쿠로카와가 메모를 적었다.

추적 계획:

1. 경성 — 한상철(M-112)을 통해 10가문 감시.
자금 이동 징후 포착.

2. 상하이 — 상하이 공사관에 협조 요청.
임시정부 자금 루트 추적.

3. 취리히 — 베른 공사관에 상세 조사 지시.
UBS 접촉자 신원 확인.

4. 핵심: 자금이 스위스에 도착하기 전에 차단.
자금이 일단 스위스 은행에 들어가면 — 회수 불가능.
스위스 은행법은 일본의 영향력 밖.

기한: 1920년 3월까지.
자금 차단 실패 시 — 독립운동의 자금줄이 100년간 보장됨.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

쿠로카와가 메모를 접었다.

"100년……"

100년간 보장되는 자금줄.

쿠로카와가 창밖을 보았다. 경성의 하늘.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조선인들이 100년을 내다보고 있다면 — 제국은 그 이상을 내다봐야 한다."

쿠로카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쿄에 보고서를 보내야 했다. 육군 참모본부. 그리고 — 외무성.

조선 독립자금 추적.

특별 작전.

쿠로카와가 도쿄에 보내는 전문을 작성했다.

極秘電報
宛先: 陸軍参謀本部 情報部
発信: 黒川源三 大尉(朝鮮総督府 情報課)

件名: 朝鮮独立資金ノ海外移動ニ関スル件

概要: 朝鮮人活動家(推定: 延在熙)ガ、米州募金活動ヲ経テ
瑞西(スイス)銀行ニ接触セルモノト判断ス。

推定資金規模: 二千万弗(ドル)
推定預金先: 聯合銀行(UBS)取利比(チューリヒ)本店

対策:
一、経城(京城)ニテ関連人物十名ノ監視ヲ強化ス
二、上海公使館ニ資金経路ノ追跡ヲ要請ス
三、伯恩(ベルン)公使館ニ瑞西銀行トノ交渉ヲ指示ス

緊急度: 最高

黒川源三

전문을 봉투에 넣었다.

도쿄까지 — 3일.

쿠로카와가 봉투를 봉인하며 생각했다.

'연재희. 네가 100년을 생각한다면 — 나는 네가 100년을 채우지 못하게 하겠다.'

그것이 — 쿠로카와 겐조의 맹세였다.
<hr>
10월 10일. 경성. 장윤보의 무역상.

한상철이 장윤보의 무역상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종로 4가. '장윤보무역(張允甫貿易)'이라는 간판이 걸린 2층 목조건물. 1층이 창고, 2층이 사무실.

장윤보. 10가문 장 가문의 당주. 마흔여섯. 무역으로 재산을 모은 남자. 연재희의 가장 가까운 동지.

한상철은 장윤보를 직접 접근할 수 없었다. 장윤보는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3.1운동 이후 더더욱. 낯선 사람의 접근을 경계했다.

그래서 — 우회했다.

장윤보의 무역상에 물건을 납품하는 소재상(小材商) 김복동. 한상철의 술친구. 이 남자를 통해 장윤보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복동아, 요새 장 사장 바빠?"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한상철이 물었다.

김복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쁜 정도가 아니여. 밤마다 2층에서 불이 안 꺼져."

"사업이 잘되나 보지?"

"사업이라기보다…… 편지를 많이 쓰는 것 같더라고. 부두 쪽에 사람을 자주 보내고."

부두.

인천항.

자금을 해외로 보내는 루트가 인천항을 통과한다는 뜻일 수 있었다.

"부두에 왜?"

"몰라. 무역상이니까 당연히 배가 들어오고 나가겠지."

한상철이 소주를 마셨다.

인천항.

기록해야 할 정보.

"아, 그리고 — 상하이에서 사람이 왔다고 하더라."

한상철의 손이 — 멈췄다.

"상하이?"

"응. 무역 거래처래. 중국 옷감 수입한다고."

상하이.

임시정부가 있는 도시. 자금이 흘러가는 도시.

한상철이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복동아, 나 한 잔 더 마셔도 돼?"

"마셔, 마셔."

한상철이 웃으며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 머릿속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보고서 M-112-0023

장윤보, 야간 활동 증가.
인천항에 빈번한 사람 파견.
상하이에서 인물 접촉.
추정: 자금 이동 준비 중.

쿠로카와 겐조 대위에게 보고 예정.

포장마차의 등불 아래, 한상철의 얼굴이 반쯤 그림자에 묻혀 있었다.

착한 상철이의 웃음과 밀정 M-112의 눈이 — 같은 얼굴 위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소주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쓴맛이었다.

한상철은 그 쓴맛이 소주 때문인지, 자기 자신 때문인지 —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생각하면 — 잠을 못 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