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2 태평양을 건너
Ch.2 태평양을 건너 — 에필로그 — 260억 달러
에필로그 — 260억 달러 (2030년 8월 14일)
서울.
코리안투데이 본사 지하 금고.
연만세가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다.
팔월 이십오일. 뉴욕.
정순의 기침이 심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돌아가야 한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연만세가 수첩을 덮었다.
이 수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뒷부분에는 스위스 여정이 적혀 있고, 귀국길이 적혀 있고, 체포와 수감이 적혀 있다. 그러나 오늘 밤 연만세가 읽고 싶었던 것은 — 태평양 부분이었다.
스물하루 동안의 바다.
111년 전, 스물일곱 살 청년이 나라를 되찾을 돈을 모으겠다고 태평양을 건넜다. 뱃멀미를 하고, 폭풍에 죽을 뻔하고, 중국 소년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쓰고.
그리고 — $12,847을 모았다.
이천만 달러의 0.06%.
연만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앱을 열었다. UBS 은행 모바일 뱅킹.
계좌 잔액이 떠올랐다.
$26,000,000,000.
260억 달러.
111년 동안 복리가 만든 숫자였다. 연재희가 1920년 스위스에 예치한 1,800만 달러에서 시작하여, 5대에 걸쳐 관리하고, 불리고, 지키고. 전쟁을 넘기고, 독재를 넘기고, 경제위기를 넘기고.
$12,847에서 시작된 돈.
사탕수수밭의 땀에서 시작된 돈.
세탁소의 세제에서 시작된 돈.
연만세가 화면을 응시했다.
"내일이면……"
내일. 2030년 8월 15일. 광복 85주년. 그리고 — 한반도 통일 선언일.
이 260억 달러가 세상에 드러나는 날.
111년 동안 지켜온 비밀이 열리는 날.
연재희가 만년필에 적은 '진실(眞實)'이 — 마침내 세상에 나오는 날.
연만세가 금고 안의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검은 만년필. '眞實' 두 글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연만세가 말했다.
"태평양을 건너셨더군요."
만년필을 빛에 비추었다.
"열두 번 돌아보셨더군요."
만년필의 금속이 차가웠다. 111년의 시간이 담긴 차가움.
"내일…… 끝냅니다."
연만세가 금고 문을 닫았다.
만년필을 주머니에 넣었다.
지하실 계단을 올라갔다. 코리안투데이 편집국을 지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서울의 밤.
종로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111년 전 만세 소리가 울려퍼진 거리. 지금은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이 채우고 있는 거리.
연만세가 걸었다.
주머니 안에서, 만년필의 '眞實' 두 글자가 — 금빛으로 빛났다.
이번에는 — 연만세도 느꼈다.
주머니가 따뜻해지는 것을.
"……할아버지?"
연만세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만년필이 뜨거웠다. 심장이 뛰듯 — 맥박이 느껴졌다.
111년의 맥박.
1919년 3월 1일부터 2030년 8월 15일까지.
만년필이 기다려온 날이 —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hr>
111년의 두 번째 페이지가 넘어갔다.
248페이지가 남았다.
— Ch.2 「태평양을 건너」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