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2 태평양을 건너

Ch.2 태평양을 건너 — Part 9 — 첫 번째 송금

Part 9 — 첫 번째 송금 (미주 순회 마무리, 1919년 7~8월)

칠월.

시카고.

기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네바다, 유타, 네브래스카, 아이오와를 지나 시카고까지. 사흘 밤낮을 기차 안에서 보냈다.

미국은 — 넓었다.

조선의 백 배는 되는 것 같았다. 기차 창밖으로 끝없는 평야가 지나갔다. 밀밭이 수평선까지 이어졌다. 소가 풀을 뜯고, 풍차가 돌아갔다. 이 나라에는 — 땅이 남아돌았다.

'조선에는 땅도 부족한데.'

연재희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넓은 땅을 가진 나라가 왜 남의 나라까지 탐내는지, 인간의 욕심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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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한인회.

한인 수는 서른두 명. 대부분 유학생이었다. 시카고 대학, 노스웨스턴 대학에 다니는 젊은이들.

연재희가 연설했다. 유학생들은 — 달랐다. 감정보다 논리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이천만 달러를 어떻게 관리할 것입니까?"

한 유학생이 물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청년이었다.

"스위스 은행에 예치할 계획입니다."

"이자는?"

"복리로 운용하겠습니다."

"인출 조건은?"

연재희가 잠시 멈추었다. 이 질문에 대해 아직 명확한 답이 없었다.

"……조국이 필요로 할 때."

"그것이 언제인지 누가 정합니까?"

"다음 세대가 정합니다."

유학생이 입을 다물었다. '다음 세대'라는 답이 — 논리적이지 않지만, 반박할 수도 없었다.

모금: $847. 유학생들은 돈이 많지 않았지만, 한 사람당 평균 $26을 냈다. 한 달 생활비의 절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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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뉴욕.

연재희가 미국 동부에 도착했다.

맨해튼. 고층 건물이 하늘을 찔렀다. 자동차가 강물처럼 흘렀다. 전기 불빛이 밤을 낮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미래의 도시구나.'

경성의 2층 일본식 건물이 미국에서는 우스운 것이었다. 여기서는 20층, 30층이 보통이었다. 사람들이 빠르게 걸었다.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뉴욕 한인회. 한인 수 스물여섯 명. 소규모였지만, 열정은 컸다.

모금: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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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 워싱턴.

팔월 이십일.

연재희가 워싱턴 D.C.에 도착했다. 미국의 수도. 백악관이 보였다.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링컨 기념관이 보였다.

링컨 기념관 앞에 섰다. 대리석 계단 위에 앉은 링컨의 동상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연재희가 중얼거렸다. 링컨의 말. 그러나 — 조선인은 평등하지 않았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미국의 사탕수수밭에서, 시카고의 세탁소에서.

"평등…… 아름다운 말이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닿지 않았소."

만년필을 꺼내 수첩에 적었다.

팔월 이십일일.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앞에서.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 한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도 조선인은 '동양인'이다.
이 나라에서도 우리는 차별받는다.
이 나라의 자유가 우리에게까지 닿으려면 — 우리가 먼저 자유로워져야 한다.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남이 일으켜주기를 기다리면 — 영원히 서지 못한다.

이것이 미주 순회 다섯 달간 내가 배운 것이다.

도산 선생의 말: "힘을 기르시오."
박용만의 말: "총을 들어야 하오."
한인 노동자들의 말: "이 달러가 조선에 갈 수 있다면."

모두 맞다.
힘도 기르고, 싸우기도 하고, 돈도 모아야 한다.

총 모금액: $12,847.

이천만 달러의 0.06%.
먼지다.
하지만 이 먼지가 모이면 — 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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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이십오일.

뉴욕.

연재희가 전보를 쳤다. 상하이 장윤보 앞으로.

'첫 송금 준비 완료. 경로 지시 바람.'

사흘 뒤 답전이 왔다.

'상하이 HSBC 은행으로 송금하라. 계좌번호는 별도 서신으로. 조봉출이 인수한다.'

연재희가 뉴욕 시티은행에 가서 $10,000을 송금했다. 나머지 $2,847은 미주 한인 사회 운영비로 남겨두었다.

"보냈습니다."

전보를 치며 연재희가 중얼거렸다.

만 달러. 이천만 달러 중 만 달러. 천분의 일도 안 되는 돈. 하지만 이 돈에는 — 칠천 명의 땀이 들어 있었다. 사탕수수밭의 땀, 세탁소의 세제, 식당의 기름때, 유학생의 도시락 값.

"보냈소."

연재희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뉴욕의 하늘은 건물 사이로 좁았다. 그러나 그 좁은 하늘 위에도 — 별은 있었다. 경성에서 보던 별과 같은 별.

"정순아. 보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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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밤.

호텔 방에서.

연재희가 장윤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처음으로 부칠 수 있는 편지.

윤보에게.

첫 송금을 보냈다. 만 달러. 적은 돈이지만, 시작이다.

미주 순회를 마쳤다. 다섯 달 동안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시카고, 뉴욕, 워싱턴을 돌았다.

배운 것이 많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독립운동이라는 것을. 그리고 — 해외 동포의 삶을.

정순은 어떠한가. 기침은. 아이는. 부탁이다, 소식을 전해다오.

머지않아 돌아가겠다. 아직 할 일이 남았지만, 돌아가겠다.

대한이가 아버지를 부르기 전에 — 반드시.

재희.

편지를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 다른 편지가 왔다.

장윤보가 보낸 편지. 연재희보다 한 달 먼저 부쳐진 편지. 뉴욕의 한인회관에 도착해 있었다.

봉투를 열었다.

재희에게.

소식을 전한다.

정순의 기침이 심해졌다. 서광제가 매일 방문하고 있다. 약을 구하려 하지만, 폐결핵은…… 쉽지 않다.

대한이는 잘 자라고 있다. 다섯 달이 되었다. 뒤집기를 한다. 젖은 잘 먹는다. 백경수가 매달 사진을 찍고 있다.

서둘러라, 재희.

윤보.

연재희의 손에서 편지가 떨어졌다.

정순의 기침이 심해졌다.

알고 있었다. 떠나기 전에 서광제가 말했다. "가슴 소리가 좋지 않다"고. 폐결핵. 이 시대에 불치병이나 다름없는 병.

"정순아……"

연재희가 호텔 방 창밖을 바라보았다. 뉴욕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 불빛이 경성까지 닿을 수 있다면.
이 도시의 의술이 정순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러나 — 닿을 수 없었다.

태평양 너머의 아내가 기침을 하고 있고, 연재희는 뉴욕의 호텔 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만년필을 잡았다. 손이 떨렸다.

수첩에 적었다.

팔월 이십오일. 뉴욕.

정순의 기침이 심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스위스 은행에 자금을 예치해야 한다.
그것이 끝나면 — 돌아간다.

기다려다오, 정순.
조금만 더.
조금만.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
이기겠지?
이겨야 한다.

연재희가 수첩을 덮었다.

만년필의 '眞實' 두 글자가 호텔 방의 전등빛에 반짝였다.

이번에는 빛나지 않았다. 금빛도 없었다.

그저 — 검은 만년필이 검은 글씨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밤이 깊어갔다.

뉴욕의 밤.

태평양 건너 경성의 낮.

두 도시 사이에 — 바다가 있었다.

바다가 너무 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