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1 만세의 날
Ch.1 만세의 날 — 에필로그 — 111년 뒤
에필로그 — 111년의 첫 페이지
2030년 8월 14일.
서울.
한 노인이 종로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연만세. 오십칠 세. 흰머리가 관자놀이에 내려앉은 사내. 연재희의 증손자. 연대한의 손자. 연독립의 아들. 코리안투데이 디지털 대표.
그의 손에 만년필이 들려 있었다.
검은 만년필. '眞實' 두 글자.
111년 전 연재희가 탑골공원에서 주운 바로 그것.
연만세가 멈춰 섰다. 종로 뒷골목의 한 지점. 이제는 커피숍과 편의점이 들어선 거리. 그러나 그의 눈에는 — 백 년 전의 한옥이 보였다.
여기였다.
1919년 3월 1일, 연대한이 태어난 곳.
1919년 3월 7일, 연재희가 마지막 밤을 보낸 곳.
1919년 3월 8일, 연재희가 새벽에 문을 닫고 나선 곳.
연만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전화를 걸었다.
"통일아."
"네, 아버지."
연통일. 스무 살. 5대. 마지막 세대. 내일이면 — 모든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는 날.
"내일 준비는 됐느냐?"
"네."
"떨리느냐?"
잠깐의 침묵.
"네. 떨려요."
"그래야 한다. 떨리지 않으면 가짜다."
연만세가 종로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2030년의 하늘. 고층 빌딩 사이로 좁아진 하늘. 그러나 그 하늘은 — 1919년의 하늘과 같은 하늘이었다.
"아버지."
"응."
"증조할아버지는…… 정말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을까요?"
연만세가 웃었다. 쓸쓸한 웃음이었다.
"열두 번 돌아보셨단다."
"네?"
"기록에 그렇게 써 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거짓말이다. 열두 번 돌아보았다.'"
연통일이 전화기 너머에서 웃었다. 그리고 — 울었다.
"아버지."
"응."
"저도…… 열두 번 돌아보면서 가겠습니다."
"그래라."
연만세가 전화를 끊었다.
만년필을 들어올렸다. '眞實' 두 글자가 서울의 가로등 빛에 반짝였다.
"할아버지."
연만세가 말했다. 종로 뒷골목의 어둠 속에서.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곳에서.
"111년이 됐습니다."
<hr>
그리고 — 시간이 되감겼다.
<hr>
1919년 3월 8일.
태평양.
봉황호 삼층 화물칸.
쌀 가마니 사이에 누운 연재희가 수첩을 펼쳤다.
만년필을 들었다.
등유 램프의 흔들리는 불빛 아래서, 그가 적었다.
일기.
삼월 팔일. 둘째 날.
파도가 높다.
배가 흔들린다.
뱃멀미가 심하다. 서광제가 준 약을 먹었다.
정순이 보고 싶다.
대한이가 보고 싶다.
경성이 보고 싶다.
하지만 앞으로 간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이 만년필이 나를 데려갈 곳이 있다.
이 만년필이 내게 보여준 것이 있다.
111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알아갈 것이다.
이 바다 위에서.
이 만년필과 함께.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
연재희가 수첩을 덮었다.
배가 흔들렸다. 파도가 선체를 때렸다. 쌀 가마니가 삐걱거렸다.
그 속에서 — 만년필이 빛났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쌀 가마니 사이에서, 태평양 한가운데서.
'眞實' 두 글자가 금빛으로 한 번 — 번쩍.
그리고 다시 어두워졌다.
<hr>
111년의 첫 페이지가 넘어갔다.
249페이지가 남았다.
— Ch.1 「만세의 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