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1 만세의 날

Ch.1 만세의 날 — Part 7 — 떠나는 자, 남는 자

Part 7 — 마지막 밤 (1919년 3월 7일)

밤.

아이가 잠들었다.

연대한. 세상에 나온 지 엿새 된 아이. 정순의 가슴 위에서 배를 불리고, 주먹을 불끈 쥔 채 잠들었다.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정순이 아이를 내려놓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조심스럽게. 가볍게.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다루듯.

연재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 사이에 잠든 아이가 있었다. 등잔불이 아이의 얼굴 위에서 흔들렸다.

"정순아."

"네."

"할 말이 있소."

정순이 고개를 들었다.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 알았다.

여자의 직감이었다. 삼월 초하루 이후 남편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밤마다 뒷방에서 동지들과 머리를 맞대는 것을. 지도를 펼쳐놓고 태평양을 손가락으로 짚는 것을. 아이를 안을 때마다 눈에 물기가 어리는 것을.

"떠나시는 거죠."

말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연재희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오."

"어디로요?"

"미주. 샌프란시스코."

"얼마나요?"

연재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나.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는가. 한 달? 석 달? 일 년? 그는 몰랐다. 이천만 달러를 모으는 데 얼마가 걸릴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빨리…… 돌아오겠소."

"빨리가 얼마나인지 모르겠어요."

정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이 여인은 — 삼일 밤을 틀어막은 골목에서 혼자 진통을 견뎌낸 여인이었다. 만세 소리를 들으며 아이를 낳은 여인이었다. 울지 않는 여인이었다.

"자금을 모아야 하오."

"독립자금이요?"

"그렇소."

"얼마나?"

"이천만 달러."

정순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천만 달러. 종로 뒷골목 한옥에서 쌀밥을 아껴 먹으며 사는 여인에게, 이천만 달러는 — 숫자가 아니라 영원이었다.

"그 돈을 모으러…… 바다를 건너시는 거예요."

"그렇소."

"돌아올 수 있어요?"

"반드시."

"약속해요."

"약속하오."

정순이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연대한. 만세 소리를 들으며 태어난 아이. 이 아이의 아버지가 — 바다를 건너려 하고 있었다.

"이 아이……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크겠네요."

연재희의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

"아이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시오."

"무슨 이야기를요?"

"미친 사내 이야기를. 나라를 되찾겠다고 바다를 건넌 미친 사내."

정순이 웃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미친 사내…… 맞아요. 여보, 당신은 미쳤어요."

"미쳤소."

"하지만."

정순이 연재희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이었다. 태극기 서른일곱 장을 그린 손. 만삭의 배를 안고 밤마다 등잔불 아래서 빨강과 파랑을 칠한 손.

"미친 사내를 사랑해요."

연재희가 아내의 손등에 이마를 대었다. 뜨거운 것이 눈에서 흘러내렸다.

"정순아."

"네."

"당신이…… 당신이 그린 태극기가 경성의 하늘을 뒤덮었소."

"알아요. 말씀하셨잖아요."

"아니, 다시 말하는 것이오. 당신이 밤마다 등잔불 아래서 그린 그 태극기 — 서른일곱 장의 태극기 — 그것이 경성을 뒤흔들었소. 당신이 한 일이오."

정순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린 것뿐이에요."

"그것이 전부가 아니오."

연재희가 아내의 눈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그린 태극기를 들고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소. 그 태극기 아래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소. 당신의 손끝에서 시작된 것이오. 이 혁명은."

정순이 울었다. 이번에는 소리 내어 울었다. 참고 참았던 것이 터진 것이었다. 출산의 고통도, 혼자 견딘 진통도, 남편을 보내야 하는 두려움도 — 한꺼번에.

연재희가 아내를 안았다. 마른 몸이었다. 출산 후 더 말라버린 몸이었다. 등뼈가 손에 잡혔다.

"꼭 돌아와요."

"돌아오겠소."

"이 아이가……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을 때까지."

"그러겠소."

"약속이에요."

"약속이오."
<hr><hr>
한일명이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펼치자 — 그림이 나타났다.

먹으로 그린 산수화. 그러나 보통 산수화가 아니었다. 산 위에 태극기가 꽂혀 있었고, 산 아래에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구름 사이에 '독립'이라는 글자가 숨어 있었다.

"일명, 이것은……"

"그려봤네."

한일명이 담담하게 말했다. 궁중 화원 출신의 솜씨. 한 붓에 산이 솟고, 한 획에 사람이 살아났다.

"언뜻 보면 산수화야. 일본 놈들이 봐도 그냥 산수화지.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것이 보이네."

한일명이 산수화 구석을 가리켰다. 바위 사이에 작게 — 사람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열 명. 원형으로 둘러앉은 열 명.

"우리?"

"그래. 우리 열 명이네."

연재희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열 명 중 한 명이 만년필을 들고 있었다. 한 명은 카메라를. 한 명은 저울을. 한 명은 청진기를. 한 명은 칼을. 한 명은 분필을. 한 명은 붓을. 한 명은 활자를. 한 명은 나침반을. 한 명은 범선을.

각자의 상징.

"이 그림을 보관해주게, 재희."

"왜 나에게?"

"바다를 건너는 사내에게는 고향이 필요하네. 이 그림이 네 고향이 되어줄 것이네."

연재희가 그림을 돌돌 말아 품에 넣었다. 만년필 옆에. 심장 가까운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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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정순이 깨어 있었다.

연재희가 알고 있었다. 이 여인이 잠든 척하고 있다는 것을. 등을 돌리고 누워 있지만,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정순아."

"……네."

"깨어 있었소?"

"잠이 안 와요."

정순이 돌아누웠다. 눈이 젖어 있었다. 등잔불에 비친 눈물이 — 별처럼 빛났다.

"여보."

"응."

"한 가지만…… 약속해줘요."

"말하시오."

"살아서 돌아와요."

"약속하오."

"아니, 그런 약속 말고."

정순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출산 후 약해진 몸이 흔들렸다.

"약속을 할 때…… 사람들은 쉽게 말해요. '반드시 돌아오겠소' — 그런 말은 전장에 나가는 군인도 하고, 술 마시러 가는 남편도 하고, 시장에 가는 아낙네도 해요."

"그렇소."

"그런 가벼운 약속 말고요."

정순이 연재희의 두 손을 잡았다.

"이 아이가…… 아버지를 처음 부르는 날까지. '아버지' 하고 처음 부르는 날까지. 그때까지 — 살아 계세요. 제발."

연재희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아이가 아버지를 처음 부르는 날.

보통 아이가 말을 시작하는 것이 두 살 무렵. 그러면 — 이 년. 이 년 안에 돌아와야 한다. 이 년 안에 이천만 달러의 씨앗이라도 뿌려야 한다.

"약속하오."

이번에는 가볍게 말하지 않았다.

"이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날까지, 살아서 돌아오겠소."

정순이 남편을 안았다. 약한 팔이었다. 그러나 그 약한 팔에 — 세상 모든 힘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하나 더?"

정순이 이불 밑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머니였다. 비단 주머니.

"이것이 뭐요?"

"열어보세요."

연재희가 주머니를 열었다. 안에 — 머리카락 한 타래가 들어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정순의 머리카락.

"무슨……?"

"옛날 사람들은 떠나보내는 이에게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대요."

정순이 미소 지었다. 볼 위로 눈물이 흘렀지만, 미소였다.

"바다 위에서 외로울 때…… 이것을 보세요. 그러면 내가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연재희가 주머니를 가슴에 안았다.

만년필이 한쪽, 머리카락이 한쪽.

심장의 왼쪽에 진실, 오른쪽에 사랑.

이 두 가지를 안고 — 태평양을 건너야 했다.
<hr>
정순이 다시 누웠다.

"자시오."

"네."

"아이가 울면…… 깨우시오."

"안 깨울 거예요. 당신은 가서야 해요."

정순이 등을 돌렸다.

"여보."

"네."

"고맙소."

"무엇이요?"

"나와 살아줘서. 이 힘든 세상에서, 나와 살아줘서."

정순이 대답하지 않았다. 어깨가 다시 떨리고 있었다.

연재희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옥의 서까래. 아버지가 지은 집의 서까래. 이 서까래 아래서 자랐고, 이 서까래 아래서 장가들었고, 이 서까래 아래서 아들이 태어났다.

내일이면 — 이 서까래를 떠난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닭이 울었다.

첫 번째 닭울음.

두 번째 닭울음.

세 번째.

연재희가 일어났다.

새벽.

아이가 잠든 사이, 연재희가 종이를 꺼냈다.

만년필. '眞實' 두 글자가 새겨진 검은 만년필.

등잔불 아래서, 그가 글을 썼다.

내 아들 대한에게.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 나는 네 곁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라.

네 이름은 대한이다.
대한의 대(大)는 크다는 뜻이요,
한(韓)은 우리 겨레를 이르는 말이다.

너는 만세 소리를 들으며 태어났다.
삼천만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에 나왔다.
그러니 너는 — 만세의 아이다.

아버지는 바다를 건너야 한다.
나라를 되찾는 데 필요한 것을 가지러 가는 것이다.
돌아올 것이다. 반드시.

하지만 혹시 —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이 만년필을 기억해라.
이 만년필에 새겨진 두 글자를 기억해라.

眞實.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
네 이름이 그 증거다.

아버지가.
1919년 3월 7일 새벽.

연재희가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봉투 겉면에 적었다.

'내 아들 대한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날에 열 것.'

그리고 — 만년필을 내려다보았다.

'眞實' 두 글자.

이것을 가져갈 것인가, 남길 것인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 가져가기로 했다.

진실을 기록해야 한다. 바다 위에서도, 남의 땅 위에서도, 기록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 만년필은 나와 함께 태평양을 건넌다.
<hr>
연재희가 정순의 머리맡에 봉투를 놓았다.

정순이 잠든 얼굴. 볼 위에 눈물 자국이 말라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남아 있었다. 울면서도 웃는 여인. 울 때보다 웃을 때가 더 슬픈 여인.

"당신은…… 강한 사람이오."

연재희가 속삭였다.

"나보다 강한 사람이오."

바다를 건너는 것은 용기가 아니었다. 남겨지는 것이 용기였다. 아이를 안고, 병든 몸으로, 이 잔혹한 식민지에서 살아남는 것이 — 진정한 용기였다.

연재희가 잠든 아이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대한아. 기다려라."

아이가 꿈틀했다. 주먹을 불끈 쥔 채.

연재희가 일어섰다.

방문을 닫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 갈 수 없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