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1 만세의 날

Ch.1 만세의 날 — Part 5 — 맹세의 밤

Part 5 — 불길 (1919년 3월 2일~5일)

삼월 이일.

아침.

연재희가 눈을 떴을 때, 아이 울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연대한. 세상에 나온 지 하루 된 아이. 정순이 젖을 물리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입이 젖꼭지를 빠는 소리가 — 이 잔혹한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소리였다.

"여보, 바깥이 이상해요."

정순이 말했다.

연재희가 대문을 열었다.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 어제만 해도 만세 소리로 들끓던 종로가 — 무덤처럼 고요했다. 대신 군화 소리가 골목 저편에서 들려왔다. 쩍. 쩍. 쩍. 일본 헌병의 순찰이었다.

"새벽에 체포가 시작됐네."

이웃집 김 노인이 담장 너머로 속삭였다.

"누구를?"

"학생들이네. 어젯밤부터 학교란 학교는 다 뒤지고 있어."

연재희의 가슴이 철렁했다. 어제 자신이 숨겨준 연희전문 학생 조봉남. 그 소년은 지금 어디 있나.

방으로 돌아왔다. 장윤보에게 전갈을 보냈다.
<hr>
오후.

장윤보가 왔다. 얼굴이 하얬다.

"재희, 큰일이네."

"무슨 일인가?"

"민족대표 삼십삼인 중 스물아홉 명이 체포되었네.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자진출두한 것이네."

"자진출두?"

"그래. 스스로 나간 것이지."

연재희가 주먹을 쥐었다. 그것이 용기인지 어리석음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 이제 일제는 미친 듯이 관련자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네."

장윤보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평양에서도 만세가 터졌네."

"평양?"

"그래. 그리고 의주, 원산, 선천…… 전국 여섯 곳에서 동시에."

연재희의 눈이 커졌다.

"여섯 곳이라니……?"

"아직 시작이네. 장날마다 만세가 터질 것이네. 내일은 열두 곳, 모레는 서른 곳. 이것은 경성만의 일이 아닌 것이네."

장윤보가 품에서 전보를 꺼냈다. 상하이에서 온 암호 전보였다.

"여운형 선생이 상하이에서 움직이고 있네. 임시정부 수립 준비를 한다는 것이야."

연재희가 전보를 읽었다. 손이 떨렸다. 어제의 만세가 — 씨앗이었다. 이제 그 씨앗이 한반도 전체에 뿌려지고 있었다.

"윤보."

"응."

"나는 반드시 미주에 가야 하겠네."

"알고 있네."

"자금이 없으면 임시정부도 독립군도 없네. 만세만으로는 나라를 되찾을 수 없네."

장윤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트를 짜겠네. 인천에서 상하이, 상하이에서 호놀룰루. 화물선 편이 가장 안전하네."

"얼마나 걸리나?"

"상하이까지 나흘, 호놀룰루까지 이십오일. 합하면 한 달."

"한 달……"

연재희가 방 안을 바라보았다. 정순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문틈 사이로 보였다. 갓 태어난 아들. 출산 후 몸이 채 회복되지 않은 아내. 그들을 두고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

"정순에게…… 말해야 하네."

"말하게."

"그런데…… 어떻게?"
<hr>
삼월 삼일.

독립선언 이틀째.

전국에서 불이 붙었다.

백경수가 종로의 연재희 집으로 뛰어왔다. 숨을 헐떡이며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재희! 대구에서도 터졌네! 부산에서도!"

"몇 곳인가?"

"오늘만 스물네 곳이네. 그리고…… 수원에서는 장터 전체가 일어났네. 상인들이 장을 접고 태극기를 들었네."

백경수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각지에서 온 소식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 평양: 5만 명 시위. 일본군 발포. 사상자 다수.
– 의주: 3천 명 만세. 헌병대와 충돌.
– 해주: 학생 2백 명 시위. 전원 연행.
– 원산: 노동자 합류. 공장 가동 중단.
– 대구: 서문시장 상인 총파업.
– 부산: 초량 시장에서 만세.

"이것은…… 혁명이네."

연재희가 종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혁명이지."

"그런데 총이 없는 혁명이네."

"그래서 더 위대한 것이네."

백경수가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내 카메라가 총이네. 찍어서 기록하고, 기록해서 전하겠네."

연재희가 만년필을 꺼냈다.

"이 만년필이 칼이네. 써서 기록하고, 기록해서 깨우겠네."

두 사내가 마주 보았다. 백경수는 카메라를 쥐고, 연재희는 만년필을 쥐고. 사진사와 기자. 기록하는 자들의 동맹.

"경수."

"응."

"너는 조선에 남아서 기록해라. 모든 것을."

"너는?"

"나는 바다를 건너겠네."

백경수의 눈이 흔들렸다.

"떠나는가?"

"떠나는 것이 아니네. 가는 것이네."

"무슨 차이가 있나?"

"떠나는 자는 돌아오지 않네. 가는 자는 반드시 돌아오네."

백경수가 한참 연재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찍겠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부탁하네."

"부탁은 무슨. 이것이 우리의 일인 것을."
<hr>
삼월 사일.

탄압이 본격화되었다.

서대문 형무소가 가득 찼다. 체포된 독립운동가들이 줄줄이 끌려갔다. 종로 일대에 검문소가 설치되었다. 통행증 없이는 거리를 걸을 수 없었다.

서광제가 밤에 왔다.

"오늘 서대문에서 세 명이 죽었네."

의사의 얼굴에 피로와 분노가 겹쳐져 있었다. 하루 종일 부상자를 치료하다 온 것이었다.

"고문인가?"

"고문이네. 물고문, 태형, 손톱 밑에 대나무 넣기……"

서광제의 손이 떨렸다. 의사의 손이. 생명을 살리는 손이. 그 손이 오늘 본 것들 때문에 떨리고 있었다.

"재희. 자네가 가야 하네."

"응."

"이 소식을 세계에 알려야 하네. 조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일본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겠네."

"나는…… 여기서 살리겠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겠네. 할 수 있는 데까지."

서광제가 가방에서 약병 하나를 꺼냈다.

"이것은 아편 진통제네. 배 위에서 아플 때 쓰게. 뱃멀미가 심할 것이야."

"고맙네."

"고마울 것 없네.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게."

서광제가 문을 나서다 돌아보았다.

"재희."

"응."

"정순이에게…… 잘 말하게. 출산 후라 몸이 약하네."

연재희가 눈을 감았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hr>
삼월 오일.

다섯째 날.

전국 시위 참가 인원이 백만을 넘어섰다.

이 사실은 나중에야 알려지겠지만, 연재희는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장윤보의 정보망을 통해 각지의 소식이 물밀듯 들어왔다.

이상덕이 찾아왔다.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수원에서 왔네."

"수원? 무슨 일이 있었나?"

"제암리라는 마을이 있네."

"알고 있네."

"그곳에서…… 일이 터질 것 같네."

이상덕의 눈이 어두웠다. 군인의 직감이었다. 탄압이 단순한 체포를 넘어 학살로 갈 수 있다는 예감.

"재희. 빨리 떠나게."

"왜 서두르는가?"

"항구 봉쇄가 시작되고 있네. 인천, 부산, 원산. 일본 해군이 들어왔네. 며칠 지나면 쥐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게 되네."

연재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얼마나 남았나?"

"장윤보에 따르면, 사흘. 사흘 안에 떠나야 하네."

사흘.

연재희는 세 손가락을 펼쳐 바라보았다.

삼 일.

그 안에 아내에게 말해야 했다.
그 안에 아이를 맡겨야 했다.
그 안에 조선을 떠나야 했다.

"알겠네."

연재희가 주먹을 쥐었다.

삼 일.

조봉출이 밤에 찾아왔다. 어둠 속에서 담을 넘어 들어왔다. 대문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헌병의 감시가 있었으므로.

"재희."

"봉출이냐."

"남대문시장이 불탔네."

연재희의 눈이 커졌다.

"불?"

"헌병 놈들이 시장에 불을 질렀네. 만세를 부른 상인들의 점포를 골라서. 내 포목점도 반쯤 탔네."

조봉출의 얼굴에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옷에 불 냄새가 배어 있었다. 두 손은 물집으로 부풀어 있었다 — 불을 끄려다 데인 것이었다.

"다친 데는 없나?"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네."

조봉출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검게 그을린 저울추 하나를 꺼냈다.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저울이네. 저울대는 타버렸지만, 이것만 건졌네."

저울추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사 근짜리 놋쇠 저울추. 세 대째 남대문시장을 지켜온 조봉출 가문의 유산이었다.

"재희. 장사치가 만세를 부르면 이렇게 되는 것이야."

"후회하나?"

조봉출이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단호하게.

"후회는 개가 해도 되는 것이지. 나는 사람이네."

그리고 웃었다. 이가 하나 빠져 있었다. 헌병에게 맞은 자리.

"재희. 시장이 타도 장사는 못 죽이네. 내일이면 판자로 다시 짓고, 모레면 다시 팔기 시작하네. 그것이 장사치야."

"봉출."

"응?"

"미주에서 모은 자금…… 네 네트워크로 보내겠네."

"알겠네. 상하이를 거쳐서 조선으로. 무역 대금으로 위장해서. 일본 놈들 코를 꿴단 말이지."

조봉출이 저울추를 주머니에 넣으며 일어섰다.

"재희. 나는 이 저울추로 맹세하네. 네가 보내는 돈 한 푼도 중간에서 떼지 않겠네. 한 푼도."

"믿네."

"믿어도 좋네. 장사치의 가장 큰 자산은 신용이네. 신용을 잃으면 장사가 끝이야. 그리고 나는…… 조국이라는 거래처를 잃고 싶지 않네."

조봉출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담을 넘어. 왔던 것처럼 소리 없이.
<hr>
삼월 사일 오후.

최운학이 왔다.

두루마기 안에 책 한 권을 숨기고 있었다. 조선어 사전이었다. 배재학당 시절 스승에게 받은 것이었다.

"재희. 이것을 보게."

최운학이 사전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 빨간 줄이 쳐져 있었다.

'독립(獨立): 남의 간섭이나 보호를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

"일본 놈들이 이 단어를 사전에서 지우려 하네."

"지울 수 있겠나?"

"지울 수 있지. 종이 위의 글자는 칼로 베면 되니까. 하지만——"

최운학이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여기서는 못 지우네. 여기 들어간 것은 총으로도 못 빼네."

연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학. 네가 할 일이 있네."

"말하게."

"내가 떠나면, 이 거리에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네. 부모가 잡혀가고, 집이 불타고, 학교가 문을 닫으면 — 아이들이 거리에 나앉게 되네."

"알고 있네."

"그 아이들을 모아서 가르치게. 한글을 가르치고, 역사를 가르치고, 산수를 가르치게."

"야학이네."

"그래. 야학. 낮에는 숨고, 밤에 모이는 학교."

최운학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교육자의 빛.

"좋네. 하겠네."

"그리고…… 내 아들 대한이가 크면."

"대한이를?"

"대한이에게 글을 가르쳐주게. 한학과 서학을 모두.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맡기게."

최운학이 사전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

"재희. 칼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활자가 아무리 작아도, 머릿속의 글자는 못 베네. 교육은 가장 느린 혁명이지만, 가장 확실한 혁명이네."

연재희가 만년필을 꺼내 최운학에게 보여주었다.

"이 만년필에 '진실'이라고 쓰여 있네."

"보이네."

"진실은 가르쳐야 전해지네. 가르치지 않으면 잊히네."

"그러므로 교육이 진실의 그릇이네."

두 사내가 마주 보고 웃었다. 서당 아이들처럼.
<hr>
삼월 오일 아침.

윤택선이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상자를 열자, 안에 기계 부품이 가득했다. 톱니바퀴, 용수철, 구리선, 납땜 인두.

"이것이 뭔가?"

"시계를 분해한 것이네."

윤택선이 부품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분침을 움직이는 작은 톱니바퀴.

"재희. 시계는 톱니바퀴들의 협동이네. 하나가 빠지면 시간이 멈추네."

"우리도 그렇다는 뜻인가?"

"정확하네. 우리 열 명이 톱니바퀴네. 하나가 빠지면 전체가 멈추네. 하지만——"

윤택선이 상자에서 다른 부품을 꺼냈다. 시계의 태엽.

"태엽이 있으면 시간은 멈추지 않네. 네가 바로 태엽이네, 재희."

"나?"

"네가 미주에서 보내올 자금이 태엽이네. 그것이 있어야 우리 톱니바퀴들이 돌아가네."

윤택선이 상자에서 작은 장치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나무 상자에 든 기계.

"이것은?"

"모스 부호 연습기네. 내가 만들었네."

"모스 부호?"

"전신(電信)이네. 점과 선의 조합으로 글자를 보내는 것이야. 재희, 네가 미주에 가면 연락이 끊기네. 편지는 두 달이 걸리고, 도중에 일본 놈들에게 검열당하네."

"그래서?"

"내가 무전기를 만들겠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경성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전파로 연결하겠네."

연재희가 그 작은 장치를 받아들었다. 나무 상자 위에 작은 레버가 달려 있었다. 레버를 누르면 딸깍 소리가 났다.

"이것으로 연습하게. 배 위에서 시간이 많을 것이니."

윤택선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모스 부호표였다.

"ㄱ은 점-점-선, ㄴ은 점-선-점……"

"한글 모스 부호인가?"

"내가 만들었네. 일본 놈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연재희가 윤택선의 손을 잡았다. 기름때가 끼고, 화상 자국이 있는 손. 기계를 다루는 손. 미래를 만드는 손.

"택선. 고맙네."

"고마울 것 없네. 기계를 만드는 것이 내 일인 것을. 다만——"

윤택선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반드시 연락하게. 소식이 끊기면 — 우리가 걱정하네."

"알겠네."

"약속이네?"

"약속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