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Ch.1 만세의 날
Ch.1 만세의 날 — Part 4 — 열 개의 가문
Part 4 — 피 (1919년 3월 1일, 오후)
오후 두 시.
경성의 거리는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전쟁터라는 표현은 틀렸다. 전쟁은 양쪽이 싸우는 것이다. 이것은 — 한쪽이 맞는 것이었다.
일본 헌병대가 종로 일대를 봉쇄했다. 기마대가 군중을 향해 돌진했다. 비명이 터져나왔다. 말발굽에 밟힌 노인이 쓰러졌다. 헌병의 칼에 학생의 어깨가 잘렸다. 피가 돌바닥 위에 붉은 선을 그었다.
그래도 만세는 멈추지 않았다.
"만세!"
쓰러진 자의 옆에서 일어선 자가 만세를 불렀다. 끌려가는 자의 뒤에서 남은 자가 만세를 불렀다. 피를 흘리면서도, 팔이 꺾이면서도, 만세는 멈추지 않았다.
연재희는 집에 있었다.
아이를 안고 방 안에 앉아 있었다. 갓 태어난 연대한이 아버지의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정순은 출산의 고통에 지쳐 눈을 감고 있었다. 산파 할머니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담장 너머에서 비명이 들렸다.
"잡아라! 잡아라!"
일본어였다. 헌병이 시위대를 쫓고 있었다. 종로 뒷골목까지 추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쾅!
대문이 흔들렸다.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렸다.
연재희가 아이를 정순에게 넘기고 일어섰다. 마루에서 경호가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연 서방, 헌병이——"
대문이 벌컥 열렸다.
군화를 신은 다리가 보였다. 일본 헌병 두 명이 대문 앞에 서 있었다. 그 뒤에 — 청년 셋이 헌병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학생이었다. 교복을 입고, 피 묻은 태극기를 손에 쥔 채.
"이 집을 수색한다!"
헌병이 일본어로 소리쳤다.
연재희가 대문 앞에 섰다.
"이 집에는 만삭의 산모가 있소. 방금 아이를 낳았소."
"비켜라!"
"산모와 갓난아기가 있는 집에 칼을 든 채 들어오겠다는 것이오?"
헌병이 멈칫했다. 순간이었다. 연재희의 눈이 헌병의 눈과 마주쳤다. 조선인 사내의 눈에 — 두려움이 없었다. 그것이 헌병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태극기 배포자를 추격 중이다. 이 골목으로 도망친 자가 있다."
"이 집에는 아무도 도망쳐 오지 않았소."
거짓말이었다.
방 안, 이불 밑에 — 학생 한 명이 숨어 있었다. 대문이 열리기 직전에 담장을 넘어온 소년.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학생이 이불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정순이 산모의 이불을 넓게 펼쳐 그 소년을 덮었다.
헌병이 안을 들여다보려 했다.
그때 — 아이가 울었다.
응애——
갓 태어난 연대한의 울음소리가 방 안에서 터져나왔다. 크고, 분명하고, 힘찬 울음이었다. 마치 이 집에는 아무것도 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헌병이 한 발 물러섰다.
산모와 갓난아기.
일본 헌병도 그것까지 짓밟지는 않았다. 아직은.
"……다음에 다시 오겠다."
헌병이 돌아섰다. 끌려가던 학생 셋이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연재희가 대문을 닫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가자, 이불 밑에서 소년이 기어나왔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고…… 고맙습니다."
연재희가 소년을 바라보았다. 교복이 찢어져 있었고, 무릎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이름이 뭔가?"
"조봉출 어른의 아들입니다. 조…… 조봉남입니다."
조봉출의 아들. 남대문시장 상인의 아들이 만세를 부르다 헌병에게 쫓긴 것이다.
"다쳤구나."
정순이 이불 위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연재희가 말렸다.
"당신은 누워 계시오."
"저 아이 무릎에서 피가 나잖아요."
정순이 산파 할머니에게 눈짓을 했다. 할머니가 약상자에서 붕대와 소독약을 꺼냈다. 아이를 낳은 지 한 시간도 안 된 산모가 — 다른 사람의 상처를 걱정하고 있었다.
연재희가 아내를 바라보았다.
대단한 여인이라고, 새벽에 백경수가 말했다. 맞았다. 이 여인은 — 만삭의 몸으로 태극기를 그리고, 산통 중에 소년을 숨기고, 출산 직후에 부상자를 걱정하는 여인이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거라, 봉남아."
"네…… 감사합니다, 연 어른."
소년이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연재희가 대문 밖을 내다보았다. 골목에 핏자국이 있었다. 학생들이 끌려가며 남긴 것이었다. 그 핏자국 위로 찢어진 태극기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연재희가 그 태극기를 주워 들었다.
피 묻은 태극기.
정순이 그린 것 중 하나였다. 빨강과 파랑 위에, 이제 붉은 피까지 묻어 있었다. 삼색의 태극기.
연재희가 그것을 품에 넣었다. 만년필 옆에. 심장 위에.
"기억하마."
오늘 피를 흘린 모든 이를.
오늘 끌려간 모든 이를.
오늘 만세를 부른 모든 이를.
기억하겠다. 그리고 기록하겠다. 이 만년필로.
<hr>
오후 네 시.
시위는 경성을 넘어 퍼지고 있었다. 평양에서, 의주에서, 원산에서, 선천에서 — 한반도 전역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퍼졌다. 일본 총독부가 발칵 뒤집혔다. 이것은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넘어선 것이었다. 소수의 불순분자가 아니었다. 민족 전체가 일어난 것이었다.
연재희의 한옥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먼저 온 것은 서광제였다. 의사 가방을 든 채 헐레벌떡 뛰어왔다.
"세브란스 진료소에 부상자가 넘쳐나네. 칼에 베인 자, 말에 밟힌 자, 총에 맞은 자까지."
"총?"
"서대문 쪽에서 발포가 있었네. 네 명이 맞았어. 한 명은…… 소년이었네."
연재희의 눈이 어두워졌다.
"죽었나?"
"살려냈네. 겨우."
서광제가 의사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피가 묻어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이 의사가 몇 명의 상처를 감쌌는지, 그 피가 말해주고 있었다.
이상덕이 왔다.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다.
"헌병 네 놈에게 맞았네."
"싸우지 않겠다 하지 않았나?"
"안 싸웠네. 맞기만 했네. 약속대로."
이상덕이 입술을 깨물었다. 군인의 본능은 싸우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은 맞는 것이 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싸우겠네, 재희."
"다음에."
"이 놈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으니, 우리도 총을 들어야 하네."
연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덕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만세만으로는 나라를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더 큰 것이 필요했다. 더 큰 조직, 더 큰 자금, 더 큰 결의.
이때 장윤보가 들어왔다.
"상하이에서 급보가 왔네."
"무슨 급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이네. 상하이에서."
방 안이 조용해졌다.
임시정부.
그것은 — 만세를 넘어선 다음 단계였다.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남의 땅 위에서라도, 우리의 정부를 세우겠다는 것.
"자금이 필요하네."
장윤보가 말했다.
"임시정부를 운영하려면 자금이 있어야 하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네."
"무엇이 더?"
"독립군. 만주에 독립군을 키워야 하네. 군대를 먹이고,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려면……"
"얼마나?"
장윤보가 입술을 핥았다.
"생각보다 많이."
연재희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삼월 초하루의 해가. 오늘 하루 만세를 불렀다. 피를 흘렸다.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했다.
"자금을 모으겠네."
연재희가 말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어떻게?"
"미주에 동포들이 있네. 하와이에, 샌프란시스코에, 로스앤젤레스에. 그들의 피와 땀으로 번 돈. 그 돈이 모이면……"
"얼마나 모을 수 있겠나?"
연재희가 눈을 감았다. 마음속으로 계산했다. 미주 동포 수, 평균 소득, 기부 가능 금액. 서학을 공부한 그의 머리는 숫자에 밝았다.
"이천만 달러."
방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이천만 달러. 1919년의 이천만 달러. 미국의 웬만한 도시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미쳤나?"
이상덕이 말했다.
"미쳤소."
연재희가 답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나라를 되찾을 수 있겠소?"
침묵. 그리고 — 웃음.
이상덕이 먼저 웃었다. 서광제가 웃었다. 장윤보가 웃었다. 백경수가 카메라를 들어올리며 웃었다.
"미친 놈들."
이상덕이 말했다.
"미친 놈들이 나라를 세우는 것이지."
<hr>
밤이 왔다.
경성에 야간통행금지가 내려졌다. 헌병이 골목마다 순찰했다. 그러나 집 안에서는 —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종로 뒷골목 한옥의 뒷방에서 연재희와 동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정순이 아이를 안고 있었다. 연대한. 세상에 나온 지 반나절 된 아이. 만세 소리를 들으며 태어난 아이.
연재희가 뒷방에서 잠깐 나와 아내를 보았다.
"아이는?"
"잘 먹고 잘 자요. 힘센 아이에요."
정순이 미소 지었다. 출산 후의 피로가 얼굴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눈은 밝았다.
"여보."
"응."
"오늘…… 만세를 부르셨어요?"
"부르었소."
"크게요?"
"이 아이가 들을 수 있도록."
정순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잠든 아이의 얼굴. 주먹을 불끈 쥔 채 잠든 아이. 만세 소리를 들으며 태어난 아이.
"이 아이는…… 만세를 잊지 않을 거예요."
연재희가 아내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차가운 이마였다. 출산의 고열이 식은 뒤의 한기.
"당신이 그린 태극기가 경성의 하늘을 덮었소."
정순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정말요?"
"수천 명이 들고 만세를 불렀소. 당신이 밤마다 그린 그 태극기를."
정순이 울었다. 소리 없이 울었다. 아이를 깨울까봐.
연재희가 돌아서서 뒷방으로 갔다. 동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주로 언제 떠나겠나?"
장윤보가 물었다.
"한 달 안에."
"위험하네. 일본 경찰이 항구를 감시하고 있네."
"알고 있네."
"그래도 가겠나?"
연재희가 만년필을 꺼냈다. 검은 만년필. '眞實' 두 글자.
"이 만년필로 기록하겠네. 오늘 일어난 일을. 오늘 흘린 피를. 오늘 부른 만세를. 그리고 그것을 세계에 전하겠네."
"기자가 되겠다는 것이오?"
최운학이 물었다.
"기자라…… 그보다 큰 것이네. 진실을 기록하는 자. 그것이 내 길이네."
연재희가 만년필을 등잔불에 비추었다. '眞實' 두 글자가 금빛으로 번쩍였다.
"진실은 반드시 이기네. 오늘 증명되었네."
그가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 첫 글자를 썼다.
삼월 일일.
맑음.
오늘, 조선이 독립을 선언하였다.
오늘, 만세 소리가 경성의 하늘을 뒤흔들었다.
오늘, 내 아들 대한이 세상에 왔다.
오늘, 111년이 시작되었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111년의 시작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만년필이 알려주었다.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
등잔불이 흔들렸다. 바람 한 점 없는 방 안에서, 불꽃만 홀로 흔들렸다.
연재희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111년의 첫 번째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